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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축구

2014 시즌 개막 2경기를 본 나름의 평

0. 이게 벌써 몇번째 시즌인지. 축구를 본지는 이제 10년이 넘어서 더이상 카운트할 필요가 없고, 블루포토로선 4번째 시즌. 올 시즌은 이래저래 예전만큼은 경기장을 찾지 못할 것 같지만, 몸이 수원에 있건 없건 마음만은 언제나 수원과 함께!


1. 그런데 수원, 큰일이다. 시즌전부터 어려울 거라 예상은 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렵다. 개막전 제주원정, 그리고 상주와의 홈 첫 경기. 제주원정은 항상 어려운 경기를 펼쳤기 때문에 크게 기대안한 상황에서 승점을 따왔기 때문에 일단은 합격점. 그러나 상주와의 경기에선 무너져내렸다. 경기결과와 슈팅숫자 등 기록만 봐선 괜찮았지만, 뜯어보면 약점이 무수히 많이 드러난 경기였다.


2. 수비부터 살펴보자. 곽희주는 팀을 떠났고 민상기는 첫 연습경기에서 무릎부상, 고질적인 약점으로 지적된 오른쪽수비엔 신인 조원득 외엔 보강이 없었다. 팬즈데이때 열린 단국대와의 경기에선 팬들의 불안함이 기우가 아니었음이 나타났다. 홍철-헤이네르-곽광선-조원득 4백으로 나온 수원은 이 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조원득이 나온 오른쪽 측면은 단국대의 뒷공간 롱패스에 계속해서 돌파를 허용했다. 2쿼터와 3쿼터에 투입된 조성진이 생각보다 괜찮았던걸 빼면 이래저래 암울함만 남았던 날이었다.

개막 후 2경기에선 일단 괜찮다. 팀합류가 늦어 호흡과 실전감각에 문제가 있는 헤이네르는 일단 대기명단으로 내려섰고 조성진이 선발로 올라왔다. 수비에서 계속해서 약점을 노출하던 조원득이 빠졌고 대신 신세계가 들어왔다. 수비력 면에선 어느정도 안정감을 보이고 있는 신세계였지만 공격에선 늘 아쉬움을 보였다. 개막 후 2경기만 놓고 봤을때 이전엔 높고 느리게 올라오던 크로스는 낮고 더 위협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가다듬으면 득점까지 이어질 수 있는 좋은 공격 찬스를 만들 수 있으리라 기대.

공교롭게도 상주의 2골이 모두 신세계를 앞에 두고 나왔는데, 신세계만 탓할 순 없는 골이었다. 경기 전 서정원감독은 '상주는 개인기량이 뛰어난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선수들에게) 이를 조심하라고 했다' 고 밝혔다. 김동찬의 2골은 이 개인기량이 발휘된 골이었는데, 적을 알고도 막지 못했다는 점이 아쉬울 수 밖에.

김동찬의 동점골 장면. 공격숫자가 적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신세계는 김동찬의 드리블돌파를 저지하려 했지만 파란색 원에 아주 작은, 하지만 위협적인 슈팅공간이 있었다. 수비가담해준 배기종이나 중앙수비 조성진이 이 공간을 막아줬더라면 김동찬의 원더골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실점장면도 실점장면인데 여기까지 공이 넘어오는 과정이 더 문제였다. 상주의 동점골은 철저한 역습이었는데, 그 시발점이 수원의 패스미스였다는 점은 뼈아프다.

왼쪽 측면에서 홍철의 스로인에 이은 염기훈의 논스톱 리턴패스. 이 패스가 홍철에게 연결되지 않으면서 상주의 역습이 전개되었다.

 

2선으로 넘어온 볼을 전진수비하던 곽광선이 빼앗으려 달려들었다. 뒤쪽에 서있던 오장은이 같이 압박하지 않으면서 패스할 공간이 생겼다. 교체투입된 배기종은 공격적으로 올라가 있었기 때문에 상대 선수를 마크하고 있지 않은 상황.

이 골이 나온건 0:0도 아니었고 1:0으로 수원이 앞서고 있던 상황이었기에 더 아쉽다. 상주가 경기 초반부터 선수비 후역습을 들고나온 마당에 선제골 이후 올라간 분위기에 도취된 선수들이 수비시 우왕좌왕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좀 장황하게 얘기했는데 결론은 첫번째 골, 그리고 두번째 골은 4백 수비수들만의 책임이 아닌 11명 전부의 책임이란 것이다. 두번째 골 역시 김동찬이 워낙 잘 때리긴 했지만 그전에 배기종의 수비가담이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김동찬에게 공간이 난 점, 오장은과 신세계의 압박이 약간 늦게 들어간 점이 아쉽다.


2. 다음은 미드필더. 여기가 가장 큰일이다. 개막 후 2경기에서 선보인 오장은-김은선 라인은 일단 수비에선 합격점을 보였다. 중앙 공간으로 들어오는 웬만한 패스는 다 끊어주니 제주도 그렇고 상주도 그렇고 측면을 공략하는 방향으로 선회할 수 밖에 없었다. 일단 측면으로 몰아넣고 2~3명이 압박을 해주면 공을 빼앗는건 아주 쉬운 일이기 때문에 수비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것. 단, 상대팀 윙어가 빨간색 컨디션이 되버리면 이렇게 해도 돌파를 허용하게되는데 이런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니까 일단 논외로.

문제는 공을 뺏은 후 앞으로 나갈 때다. 김은선, 오장은 모두 모험적인 패스를 하기보단 짧게 돌리는 패스를 하는 스타일이다. 이러다보니 수원의 공격루트도 뻔해졌다. 김은선, 오장은이 공을 잡았을 때의 패스 패턴을 보면

①좌우 측면 홍철이나 신세계에게 벌려주는 패스

②공을 받아주러 내려온 산토스에게 주면 산토스가 염기훈, 서정진에게 바로 연결해주는 패스

③수비라인을 끌어올린 곽광선, 조성진에게 볼을 주고 올라가는 패스. 곽광선, 조성진은 최전방 공격수에게 바로 볼을 연결하거나 측면의 홍철, 신세계에게 공을 돌린다.

철저한 지공 전술이며, 측면을 활용하는 전술이다. 이러면 상대 입장에선 막기가 쉬워진다. 일단 공이 측면으로 가면 ①개인기량으로 돌파한다 ②윙-윙백-중앙미드필더가 2:1 패스나 삼각패스로 공간을 뚫는다 는 두 가지 선택지가 가능한데, 선발로 나온 서정진과 염기훈의 컨디션이 워낙 안 좋아 둘 다 생각만큼 안되고 있다. 개인기량으로 돌파하는 경우는 거의 나오지 않았고 그나마 홍철이나 신세계가 공격을 도와주면서 생긴 공간, 그리고 이어지는 얼리 크로스 정도가 공격의 전부였다. 상주 중앙수비엔 이재성이라는 국대급 수비수가 있으니 크로스가 올라와도 웬만한건 다 차단당하기 일쑤. 상주전때 그나마 이 정도 공격이 된건 왼쪽의 홍철이 워낙 많이 뛰어줬기 때문인데, 이것도 막혀버리면 수원 공격은 정말 답 없게 된다. 서정원감독이 괜히 김두현을 언급한 것이 아니긴하다. 윙을 활용한 축구에서 김두현처럼 빠른 타이밍에 좋은 공간으로 공을 보내주는 미드필더가 있으면 측면을 돌파하기가 더욱 쉬워진다.


3. 염기훈, 산토스, 서정진의 지원이 빈약하다보니 정대세는 뭔가 해보려해도 할 수 없는 상황. 수원 전술에서 정대세는 '가짜 9번'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정대세가 공을 가지고 측면으로 빠지면 2선의 염기훈, 산토스, 서정진이 중앙으로 들어가 슈팅찬스를 노리는 패턴이 몇번 나왔는데 제주전 상대 선수의 자책골은 이 공격의 결과물이었다. 문제는 이 세 선수의 컨디션이 무척 좋지 않다는 점. 특히 공격형미드필더로서 패스를 연결해줘야할 산토스가 계속해서 패스미스를 범하면서 공격하다가 맥이 빠져버리는 상황이 자주 연출되었다. 2경기 연속 교체로 나온 조동건이 이 면에선 훨씬 나아보이고 늘 그랬듯 시즌초반 버프(+군입대버프)로 컨디션이 매우 좋아보인다. 포항전에선 선발로 한번 써봤으면 좋겠다. 염기훈, 서정진 조합을 배기종으로 대체하기엔 위에서 언급한 수비에서의 약점 때문에 좀 그렇고, 작년처럼 홍철-최재수로 측면라인을 구축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특히 주장 염기훈이 컨디션이 엄청 안 좋은게 눈에 보이는데, 정상 컨디션 회복할 때까진 좀 휴식을 주는 것도 염기훈 개인과 팀을 위해서 좋은 선택이 아닐까.

연계의 동건찡. 그가 군입대하면 이제 산토스 백업은 누가 하나...


4. 난 배기종의 후반49분 동점골이 들어갔을 때도 그리 기쁘지 않았다. 그런 감정으로 쳐다봐서였을까? 동점골 직후 내가 바라본 감독님의 표정은 썩 좋아보이지 않았다. 이 경기는 이겼어야하는 경기고, 경기 전 상대의 강점을 다 간파해놓고 그걸로 골을 먹어버렸으니.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 하였다.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정말 자주 쓰이는 손자병법의 유명한 표현이다. 이 날의 수원은 일단 적을 아는 데까진 성공했지만(지피) 나를 제대로 알지 못해서(지기) 위태로움을 맞은게 아닐까싶다. 걱정했던 것보단 조금 나은 것 같지만, 그래도 여전히 눈에 차지 않는다. 이렇게 짜릿한 경기보단 크게 위태로운 상황 없이 마무리짓는 경기를 보고싶다. 우승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훗날 2014시즌을 뒤돌아봤을 때 우승 도전을 위해 후회없이 싸운 1년이었다 는 기억을 떠올렸으면 좋겠다. 이것저것 안 맞아들어가는게 많긴 했지만 이 날의 수원은 열심히 뛰었다. 이 노력이 결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더욱더 노력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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